칼럼

[구경희의 공감교육] ‘지켜보기’가 만드는 커다란 변화

발행일시 : 2020-03-12 00:00
[구경희의 공감교육] ‘지켜보기’가 만드는 커다란 변화

상담실로 한 학생이 들어왔다. 한눈에 보기에도 왜소하고 세상 어떤 것에도 관심을 보이지 않을 듯한 표정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제대로 얼굴조차 볼 수 없었다. 눈썹 아래로 훌쩍 자란 머리카락이 커튼처럼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어려운 결심했네. 오랜만에 공부하기로 마음 먹는 거 쉽지 않았을 텐데.” “네...” 몇 마디가 이어졌지만 목소리가 너무 작아서 책상 하나 사이에 두고도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말의 내용대신 학생의 얼굴에 스쳐진 불신감을 보았다. 고등학교 입학을 앞둔 학생의 수학, 영어 테스트 결과는 일반 수업을 들을 수 없는 지경이었지만 붉은 색연필로 사선을 긋는 채점 같은 건 하지 않았다.

“집에서는 주로 뭐해? 게임이나 텔레비젼 좋아해?” “아니오. 그냥 책 읽어요” “ 오호! 멋진 친구네. 만화책 좋아하는 친구면 좋겠다” “저는 고전 좋아해요” 일부로 만화책으로 부담을 내렸는데 고전이라고 해서 반가워하며 무슨 고전을 읽고 있냐고 물었다. “햄릿이요”라며 2020년 대한민국 고등학교 입학을 앞둔 학생에게서 듣기 어려운 답이 나왔다.

우리의 상담은 이미 수학과 영어가 아니라 왜 햄릿인가, 셰익스피어는 어떤 인물이었을까, 셰익스피어를 다룬 영화를 본 적이 있는지 등으로 옮겨갔고, 학생은 커튼처럼 드리워진 머리카락 사이로 두 눈을 반짝이기 시작했다.

이미지제공=게티이미지뱅크 <이미지제공=게티이미지뱅크>

다음 날 그녀의 어머니와 상담을 진행했다. 지적 관심이 높고, 현명한 학생이 왜 학업을 거의 포기하다시피 했는지 이유를 알고 싶었다. 알아야만 해결책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강남이라고 해서 모두가 여유 있는 삶을 사는 것은 아니다. 맞벌이로 바듯이 살아가는 가정들도 많이 있는데 이 학생의 가정도 그런 상황인 듯했다.

유난히 예민하고, 어릴 때부터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던 이 학생은 사용하는 단어나 말투가 또래 친구들과는 사뭇 달랐다. 이러저러한 여러 이유들로 소외되고 친한 친구가 한 명도 없다는 얘기를 하면서 학생의 어머니는 연신 눈물을 훔쳐냈다. 중학교 2학년 때는 상담까지 받았으나 오히려 역효과만 났다는 그녀의 하소연을 들으며 셰익스피어를 말할 때 총총히 빛나던 학생의 눈빛을 기억했다.

학생에게 수업을 오라고 했다. 일반반에 들어갈 수 없으니 개인 수업을 해야 했는데, 영어, 수학에 앞서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그동안 학업을 포기했다가 용기를 낸 이유가 무엇인지를 듣고, 그 용기를 유지하기 위해서 우리가 어떤 팀워크( team work)를 만들어야 하는지를 이해시켜야 했다. 책읽기를 좋아하는 학생에게 맞는 입시 로드맵을 제시하고 이대로만 하면 **대학에 들어갈 수 있다고 했다. 그런 방법이 있는지조차 모르던 학생의 얼굴은 흥분으로 가득 차 그 설렘이 전달될 정도였다.

문제는 실제 학습을 시작하고부터였다. 도저히 고등학교를 들어갈 수준이 아니었고 입학 전 한 달을 하드 트레이닝 시켜야 했다. 다시 학생 얼굴에 그늘이 드리워졌다. 용기가 필요했다. 흔히 얘기하는 <기>를 살려주어야 했다. 2주에 한편씩 글을 써오라고 했다. 에세이든 독후감이든 어떤 글도 좋으니 써오면 학원에 붙여두고 학원의 자랑으로 여길거라고 했더니 수줍은 듯 했으나 이내, 몇 장이요? 하며 관심을 보였다. 아무도 학생이 잘하는 것에대해 말해 준 사람이 없었다고 했다, 그래서 자기는 영어 수학 못하고, 소외된 아이로만 여겨왔다며 자기 글을 기대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생각도 못했었다고 말했다. 다시 눈이 빛났다.

이미지제공=게티이미지뱅크 <이미지제공=게티이미지뱅크>

엔젤라 더크워스(Angela Duckworth)의 중 콜먼(Cody Coleman)의 일화가 생각난다. 그는 MIT에서 전기공학과 컴퓨터 공학을 전공하며 평점이 거의 만점에 가까운 학생이었다. 상당히 복잡한 어려움 속에서 겨우 학교만 다니던 그가 우연한 기회에 대학 진학을 꿈꾸게 되었다. 진학 공부 과정에서 샨텔 스미스(Chantel Smith)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고 샨텔 선생님이 물심양면으로 콜맨이 학업을 계속할 수 있도록 도왔다고 했다. 콜먼이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다.

“누군가의 인생을 변화시키는 사람이 꼭 부모여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들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어떻게 지내는지 살펴준다면 큰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그들의 삶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살펴준다면 큰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제가 직접 경험해봐서 아는데 그것이 커다란 차이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내 학생>은 매일 나와 만난다. 영어, 수학을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을 위해 날마다 오라고 했다. <내 학생>은 세상으로 한 발자국 나오는 연습 중이다. 머리카락으로 장막을 쳤던 세상과 만나고 그 속으로 자신감 있게 들어갈 준비를 하는 중이다. 매일 칭찬을 할 것이다. 칭찬받을만하니까. 생전 처음 보는 사람과 앉아서 자기를 보여준 용기는 충분히 칭찬받을만하니까 말이다. 그녀는 이제 알에서 나올 준비를 하고 있는 중이다.

구경희 cesil1004@naver.com 대학 입시 및 진학 컨설턴트이다. 중고등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친다. 일방적 가르침보다는 소통을 중요하게 여긴다. 존 버거를 존경하며 그의 태도를 본받으려 꿈꾼다. 진지하고 명랑 유쾌한 삶을 지향한다. 철학이 부재한 시대, ‘부모되기’의 어려움을 절감하며 부모교육에도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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